새
- 진규 최
- 2024년 11월 17일
- 33분 분량
1.
1991년의 일이다. 나는 국민학교 5학년이었다. 내 부모님은 맞벌이를 하셨는데 두 분 다 밤늦게 집에 돌아왔다. 나는 빈 집에 혼자 있는 게 싫어서 학교가 끝나고도 운동장에 남아 어두워질 때까지 시간을 보내곤 했다. 그날도 운동장에서 혼자 공을 차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구령대에서는 여자애들이 고무줄놀이를 했다. 같은 반 정선이도 친구들과 고무줄을 넘고 있었다.
어린 남자애들은 왜 그럴까. 남자애들 서넛이 고무줄 넘는 여자애들 뒤로 몰래 다가가는 게 보였다. 살금살금 다가가던 녀석 중 하나가 예의 그 장난을 쳤다. 고무줄을 자르고, 치마를 들추고, 속옷 끈을 당겼다 놓는 저질 장난. 주동자와 그 옆의 남자애들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여자애들을 약 올렸다. 그때 정선이가 남자애들에게 소리쳤다.
– 정말 저질이야. 저질!
남자애들은 저질 소리를 들으니 더 신이 나는지 팔짝팔짝 뛰었다. 그러다 교문 밖으로 달아났다. 나는 계속 공을 툭툭 건드리며 운동장 구석에서 시간을 보냈다. 여자애들도 곧 흩어졌다.
2.
– 이따 121동 뒤 놀이터 안 갈래?
저질 남자애들이 내게 말을 걸었다. 내가 맨날 운동장에서 혼자 공을 차고 있으니까 내게 관심이 생겼나 보다. 나는 그날도 운동장에서 시간을 보내는 중이었다. 저질 무리 중 주동자인 아이가 놀이터에 가서 같이 놀자고 했다. 물론 나는 저질 무리와 어울릴 마음이 없었지만 그러자고 대답했다. 121동은 정선이가 사는 아파트이기 때문에 그 뒤 놀이터에서 놀다 보면 정선이랑 마주치는 일이 생길 것만 같았다.
우리, 즉 나와 저질 무리는 놀이터로 향했다. 딱히 할일은 없었다. 우린 철봉을 하고, 그네를 구르다가, 미끄럼틀을 탔다. 어떤 애는 개미가 지나가는 길에 침을 뱉었다. 침에 개미가 갇혀 허우적거리는 걸 구경했다.
우리가 놀던 아파트 단지는 남한산성 능선 한쪽을 허물고 세운 단지였다. 때문에 아파트는 모두 경사지에 서 있었고, 아파트 사이사이에는 숲이, 작은 숲들이 있었다. 121동 역시 바로 뒤에 산이 있었다. 놀이터는 급한 경사지를 다듬어 만든 곳이라서 놀이터로 올라오는 계단 역시 길고 가팔랐다.
나는 121동을 힐끔거리며 그네를 구르고 있었는데, 그때 가파른 계단을 걸어 올라오며 얼굴을 드러내는 사람이 있었다. 처음에는 알아보지 못했으나 곧 알게 되었다. 정선이가 놀이터에 찾아온 것이다.
정선이가 온 걸 저질 남자애들도 알아차렸다. 심심하게 시간을 죽이고 있었던 남자애들이 갑자기 흥분해서 소리를 질렀고, 미끄럼틀 뒤에 숨고, 시소 뒤에 숨고, 철봉 위로 올라갔다. 다행히 정선이는 남자애들이 하는 짓에 말려들지 않았다. 그냥 고개를 가로저으며 픽 웃을 뿐이었다. 그러고 나서 내 쪽으로 걸어왔다.
– 너도 얘들 하고 노니?
정선이가 내게 ‘너도 저질이냐’라고 묻는 듯했다.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3.
교실에서 정선이랑 얘기하는 일이 많아졌다. 무슨 얘기를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내가 기억하는 건 이런 거다. 나는 항상 정선이를 신경 썼다. 하지만 티 내고 싶지는 않았다. 티 낸다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오히려 내 마음을 더 숨겼다. 정선이에게 보이지 않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했다.
그러다 한 번은 큰 용기를 냈는데, 정선이에게 그날 숙제가 뭔지 물어보기로 마음을 먹은 것이다. 정선이는 우등생이었다. 한 번도 숙제를 거르는 일이 없었고 시험 성적도 좋은 편이었다. 무엇보다 자존심이 강해서 누구에게 지는 걸 끔찍하게 싫어했다. 그래서 어쩔 때 보면 공부를 좋아서 한다기보다는 지기 싫어서 하는 느낌이었다. 그게 아니면 어떻게 국등학생이 숙제를 매일 할 수가 있겠나.
나는 숙제를 무시했다. 이상하게도 숙제하는 게 너무 싫었다. 아니 숙제하기가 싫었다기보다 숙제를 안 하는 게 너무 좋았다. 숙제를 안 하면 그렇게 기분이 좋았다. 당시에는 국민학교에서도 체벌이 있었는데 나는 늘 흔쾌히 손바닥 매를 맞았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정선이가 맨날 손바닥 맞는 나를 이상하게 여긴다는 게 느껴졌다. 한 번은 아침에 교실에 들어서는 나를 보자마자 정선이 이렇게 물었던 것이다.
– 너 오늘도 숙제 안 했어?
나는 당연히 숙제를 안 했으며 그날은 숙제가 뭔지도 모른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정선이는 처음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더니 갑자기 웃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요전날 구령대에서 저질 남자애들을 쳐다볼 때처럼 한숨을 푹 내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는 정선이가 나를 저질로 생각하는 게 아닐까 겁이 났다. 하지만 나는 그런 일을 겪고도 숙제를 안 하는 버릇을 고칠 수 없었다. 사실 어른이 된 지금도 그러는데, 숙제를 하면 약간 손해 보는 기분이 든다.
여튼 이 일로 인해 나는 정선이가 내가 숙제했는지에 신경 쓴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정선이에게 뭐라도 말을 걸며 다가가고 싶어 기회만 보던 어느 날, 이런 생각을 한 것이다. 정선이에게 숙제를 알려달라고 하면서 말을 걸어보면 어떨까.
자리에서 일어나 정선에게 다가가던 일이 떠오른다. 정선이는 그날 뭔가 기분이 좋지 않아 보였다. 나는 순간 자신감이 떨어졌으나 그렇다고 발길을 돌리고 싶지는 않았다. 나도 더는 그저 멀찍이서 보이지 않는 사람으로만 지내고 싶지 않았다. 내가 숨었던 것은 꼭 원해서 그랬던 건 아니었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하는지 몰랐고, 자칫 잘못해서 아예 멀어질까 봐 무서워 그랬던 거지.
정선의 책상 위에 장갑 하나가 놓여 있는 게 보였다. 예쁜 털장갑이었다. 나는 천천히 걸어가 정선의 책상 앞에 멈춰 섰다. 준비한 말을 하려던 참이었다. ‘정선아, 오늘 국어 숙제가 뭐야?’ 이 말을 하면 됐는데 말이 바로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살짝 자세를 바꿔볼 생각에 손을 뻗어 괜스레 장갑을 짚으며 책상 쪽으로 몸을 기댔다. 그 순간 내 몸무게가 팔에 실리면서 장갑을 꾹 눌렀다. 그걸 본 정선이 비명을 질렀다. 정선의 얼굴이 사색으로 변하는 게 보였다.
나 역시 이상한 걸 느꼈다. 장갑에서 예기치 않은 질감을 느낀 것이다. 장갑 안에는 참새가 있었다. 그날 아침에 정선은 학교에 오다가 길가 화단 옆에서 죽은 듯 움직이지 않는 참새를 발견했고, 어찌 해야 할지 몰라 망설이다가 장갑에 넣어 교실로 데려온 것이었다. 정선은 참새가 죽은듯 보이긴 해도 혹시 아직 살아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일단 따뜻하게 해주었다가 양호 선생님이나 담임선생님에게 도움을 청할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그 참새를 내가 눌러서 죽이고 말았다.
정선은 그날 학교가 파할 때까지 계속 울었다. 슬퍼하는 정선을 보면서 나는 말할 수 없이 참담했고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내가 무슨 짓을 저지른 거지? 내가 그동안 살면서 저지른 모든 죄를 다 합쳐도 그날 새와 정선이에게 저지른 죄보단 작을 것 같았다. 새를 죽인 일. 그리고 정선이를 슬프게 한 일. 두 가지 최악의 일을 나는 한꺼번에 저질렀다.
종례가 끝나고서 나는 정선의 자리로 갔다. 정선에게 다시 한 번 미안하다고 말했고, 새를 산에 묻어주고 싶다고 말했다. 정선은 나를 용서하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새를 묻으러 같이 가자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참새를 묻어주러 121동 뒷산으로 올라갔다. 나는 산길을 걷는 걸 그때부터 무척 좋아했고 또 항상 시간이 남아도는 처지여서 121동 뒷산도 당연히 자주 올라봤었다. 그래서 산길을 잘 알았다. 하지만 정선이는 자기네 아파트 바로 뒷산인데도 한 번도 산길을 올라본 적이 없다고 했다. 나는 당연히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정선이는 숙제를 빼놓지 않고 맨날 하는 아이니까 당연히 그럴 시간이 없었을 것이다.
나는 경사가 심하지 않은 길을 골라 정선이를 안내했다. 중턱쯤 올랐을 때 편평한 곳을 찾아냈다. 흙을 조금 파낸 후 장갑에서 참새를 꺼내 흙 안에 눕혀주었다. 흙을 덮었다. 흙까지 덮고 나서 우리는 잠시 침묵했다. 나는 불쑥 기도하고 싶었다. 성당에서 하듯이 기도하면 되지 않을까.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고, 1분 정도 기도를 했다. 기도를 시작하고서 처음에는 물론 새를 생각했다. 새가 하늘나라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하느님께서 꼭 잘 보살펴달라고 빌었다. 그러고 새에게 사과했다. 그런 다음 나는 더욱 간절한 마음으로 이렇게 빌었다. 이 일로 정선이가 나를 미워하지 않게 해달라고 신께 빌었다.
4.
몇 주가 지났다. 그날 나는 운동장에서 공을 툭툭 차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나에게 공을 차는 일은 전혀 무료한 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대화였다. 운동장 가장자리를 둘러싸고 있는 시멘트 계단이 나의 상대였다. 발로 툭 차면 공은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 계단에 부딪힌다. 공이 계단의 어느 부분에 부딪히느냐에 따라 내게 돌아오는 응답은 달라진다. 모서리에 부딪힌 공은 하늘로 붕 뜨기도 하고, 아예 계단 위로 넘어가기도 한다. 면에 부딪힌 공은 내 쪽으로 도로 떼구루루 굴러오기도 하고, 면이 만드는 각도에 따라 멀리 달아나기도 한다. 나는 공과 주고받는 그런 대화를 세 시간도 하고 네 시간도 할 수 있었다.
– 넌 맨날 공 차더라. 오늘 우리 집 갈래?
정선이가 불쑥 자기 집에 가자고 했다.
5.
정선이네 집은 우리 집과 닮은 듯하면서도 달랐다. 동은 달라도 같은 아파트 단지였으니 집의 구조나 인테리어 같은 건 익숙한 느낌이었다. 다만 몇 가지 차이가 눈에 띄었다. 일단 양주들로 채워진 캐비닛이 있다는 점이 달랐다. 정선이 아버지가 모은 양주들인 것 같았다. 양주 캐비닛은 기분을 이상하게 만들었다. 집안에 저렇게 많은 술을 모으는 사람이 있구나, 하는 놀라운 마음과 함께 뭐랄까… 여튼 기분이 이상했다. 또 하나의 차이는 오후 시간에 집에 어머니가 계시다는 것. 우리 집은 밤늦게 부모님이 돌아오시기 때문에, 나는 정선이네 집에 오면서 나도 모르게 정선이네 부모님도 당연히 이 시간에는 집에 안 계실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머니가 앞치마를 두른 채 우리를 기다렸다는 듯이 맞아주셔서 티 내진 않았지만 깜짝 놀랐다. 차이가 하나 더 있었다. 방들에 방문이 없었다. 화장실을 뺀 모든 방의 방문을 뗀 것이다. 왜 그렇게 한 걸까 궁금했지만 묻진 못했다.
정선이 어머니가 ‘컵라면 먹을래?’ 하고 물으셨다. 나는 ‘네 좋아요’ 하고 큰소리로 대답했다. 잠시 후 정선이 어머니가 나와서 밥 먹으라고 우릴 불렀고, 식탁에 나가 보니 냄비에 끓인 컵라면이 차려져 있었다. 컵라면 용기에 뜨거운 물을 바로 부우면 몸에 나쁜 성분이 나오기 때문에 이렇게 냄비에 끓여 먹는 게 좋다는 설명을 들으면서 라면을 먹기 시작했다.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맛있게 라면을 먹은 우리는 정선의 방에 들어가 놀기로 했다. 방에 둘이 있으니 조금 뻘쭘했다. 정선의 방에는 창문이 있었는데, 창문가로 다가가 바깥을 바라보니 학교 운동장이 바로 보였다. 아, 설마 내가 공차는 모습도 여기서 보일까, 그럼 정선이가 가끔 날 쳐다보려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방에서 창문 밖을 유심히 내다보는 사람은 드물겠지만 혹시 날 보고 싶은 마음이 들면 정선이가 이 창문으로 운동장에서 날 찾아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을 하니까 나도 모르게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 같았다. 들키면 큰일인데 하고 생각하는 순간 현관 벨 소리가 들렸다.
벨을 누르고 집에 들어온 사람은 성우였다. 나는 몰랐는데 정선이가 성우도 집으로 초대한 것이었다.
6.
성우와 정선이가 최근 들어 무척 가까워진 걸 나도 알고 있었다. 성우는 나와도 무척 친한 사이였다. 성우는 성격이 밝고 귀여웠다. 너무 흔한 표현이지만 성우는 정말 그랬다. 밝고 귀여웠다. 꼭 만화에 나오는 사람 같았다. 얼굴이 하얗고 머리칼이 부드럽고 눈웃음이 근사해서만이 아니라, 정말 약간 비현실적인, 만화 캐릭터처럼 귀여운 느낌을 지닌 아이였다. 성우가 눈웃음 지으며 웃는 모습을 볼 때면 천진난만, 순진무구 같은 말이 저절로 떠올랐다.
그런 성우가 어느 날 나한테 말을 걸었다. 나보고 RC카에 관심 있냐면서, 자기랑 RC카 경기 보러 가지 않겠냐고 물었다. 나는 엄청나게 뜬금없다고 생각하면서도 기분이 좋았다. RC카에 대해선 몰랐지만 성우랑 가까워지면 재밌을 것 같았다. 그날부터 우리는 RC카를 사서 개조하고, 훈련하고, 경기 보러가고 하면서 빠르게 가까워졌다.
그러던 어느 날, 담임 선생님이 수업 중간 쉬는 시간에 성우를 부르더니 집에 얼른 가보라면서 가방을 싸게 하셨다. 그날 저녁에 성우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셨다. 암으로 몇 년간 투병 생활을 하셨다는 걸 우리는 나중에 알게 되었다. 성우는 아버지 상을 치르는 며칠 동안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성우가 학교에 다시 나왔을 때, 성우에게서 뭔가 다른 분위기가 느껴졌다. 환하고 귀여운 눈웃음은 여전했다. 하지만 이제는 천진난만이라는 표현과는 어울리지 않는 다른 분위기가 생긴 것만 같았다. 그런 성우를 나는, 기다렸다. 무엇을 기다렸는지 모르겠지만, 천천히 기다렸다. 성우가 다시 예전처럼 무구한 얼굴로 RC카 경기 보러 가자고 말하기를 기대했던 것도 같다. 그런데 정선이네 집에서 이렇게 갑자기 마주치게 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터라 깜짝 놀라고 말았다.
7.
뻘쭘하게 눈치를 보던 나와는 달리 성우는 쾌활한 에너지를 내뿜었고 정선이와도 정선이 어머니와도 재밌게 얘기를 나누었다. 정선이 어머니는 성우에게 아버지 돌아가시고 얼마나 힘들었냐며 위로를 건네신 다음 언제든 정선이한테 말해서 집에 놀러오라고 했다. 맛있는 거 해주겠다면서. 그러자 성우는 자기는 갈비를 좋아한다고, 다음에 갈비해달라고 어머니에게 말했다. 나는 살짝 충격을 받았다. 저런 말을 할 수 있는 성우가 부러웠다.
우리 셋은 정선의 방으로 다시 들어왔다. 정선은 중학생인 언니와 방을 같이 썼는데 그런 까닭에 방은 두 사람치 물건들로 더 비좁았다. 우리 셋은 몸을 웅크리고 좁은 바닥에 붙어 앉았다. 그때 성우가 바닥에 있던 정선의 책장에서 책을 한 권 꺼냈다. 어린이 세계문학전집 중 한 권이었다. 성우는 『제인 에어』를 꺼내 정선에게 보이며 이 책 혹시 읽었냐고 물었다.
정선과 성우는 『제인 에어』부터 시작해서 『어린 왕자』, 『갈매기의 꿈』, 『데미안』 같은 책들의 이야기를 한참 나눴다. 나는 지금도 마찬가지인데, 책을 읽은 다음 줄거리를 매끄럽게 정리해서 말하지 못한다. 간혹 내게 인상적이었던 부분에 대해서는 꽤나 신나게 떠들기도 하지만, 책 전체의 줄거리나 인물 특징 같은 것을 술술 말하지 못한다. 나는 아마도 책을 읽을 때 서사를 우선으로 파악하기보다 산발적으로 감상을 이어나가는 쪽이라서 그런 것 같다. 그런데 성우에게는 작품의 서사를 이야기꾼처럼 매끄럽게 말하는 능력이 있었다. 인물마다의 장점이나 단점을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말하는 능력도 있었다. 그래서 성우의 얘기를 듣고 있다 보면 내가 직접 책을 읽는 것보다 성우에게 책 얘길 듣는 게 더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때문에 나는 그 순간 성우에게 무한한 부러움과 함께 질투를 느꼈다. 정선이도 성우의 이야기에 완전히 빠져들었다는 것이 느껴졌다. 성우는 가슴 아픈 일을 겪은 뒤에 더 성숙한 느낌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세상에 대해서도 우리보다 훨씬 많이 아는 느낌이었고, 귀여운 외모에 더해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드는 넉살까지 부릴 줄 아는 데다, 자기가 탐닉한 책들을 하나하나 이야기할 때는 훌쩍 어른처럼 느껴졌다. 나만 그렇게 느낀 게 아니라 정선이도 똑같이 느끼는 것 같았다. 나는 한없이 초라해지는 기분이었다. 정선에게 초대를 받았을 때는 너무 좋아서 가슴이 터질 것 같았는데, 이제는 아무 데로도 도망갈 수 없어서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그 책들 중에서 내가 읽어본 책은 한 권도 없었다. 그날 헤어질 때 나는 겨우 용기를 내서 정선에게 물었다. 내게 책을 한 권만 빌려줄 수 있냐고.
8.
정선이 빌려준 책은 『데미안』이었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는 구절로 유명한 데미안. 나는 빌려온 책을 바로 펼치지 않았다. 주말을 위해 아껴두었다. 주말에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일하는 성당에 가서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내야 했는데, 그곳에서는 공을 찰 수도 없어서 심심함을 달래며 시간을 보내는 일이 늘 큰 숙제였다. 하도 할일이 없어서 주차장 마당에서 색다른 모양의 돌을 찾아 줍기도 했었다. 간혹 손도끼 모양의 돌을 줍게 되면 내가 석기시대 유물을 주운 게 아닐까 생각하며 남몰래 들뜨곤 했다. 나는 돌 수집품들을 버리지 않고 모두 보물상자에 넣어 보관했었는데, 그러다 집이 이사하는 일이 생기면 그 보물상자들은 모두 내다버려지곤 했다. 나는 다가오는 주말에 성당에서 돌을 줍는 대신 책을 읽으리라 다짐했다. 할일이 생겨서 기뻤다.
9.
아버지는 군대에서 재직하는 군무원이었고 어머니는 성당에서 사무장으로 일했다. 가진 것 하나 없이 결혼한 두 사람은 결혼 이후 한 번도 쉬는 일 없이 두세 가지 일을 하며 열심히 살았지만 늘 생활이 어려웠다. 당시에는 많은 이들이 (상대적 가난 말고) 절대적 가난을 마치 떨어지지 않는 등짐처럼 이고지고 살았기 때문에 우리 부모님의 처지가 특별한 것은 아니었다.
아버지는 정보부대에서 군사정보 처리를 담당하는 군무원이었는데, 퇴근 후에는 짬짬이 문구류를 문방구들에 유통하는 일도 했다. 밤늦게 일을 마치는 어머니의 퇴근을 돕는 일도 했다. 원래 교사를 하려고 했던 아빠는 사범대학을 잘 다니다가 갑자기 현실적인 불안이 커졌다고 했다. 장래에 교사 월급만으로는 가족을 부양하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학교를 때려치우고 서울로 상경했다고 한다.
어머니가 처음으로 다녔던 직장은 어느 의상실이었다고 한다. 시골에 살면서 중학교를 졸업한 엄마는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면 소재지의 한 의상실에 사환으로 취업했다. 엄마는 자기가 그때 의상실에서 일을 한 덕분에 옷을 보는 안목이 좋아졌다고 자랑한 적이 있다. 성인이 된 엄마는 서울 상경을 결심했고, 노력 끝에 우체국 취업에 성공한다. 엄마는 우체국에서 열심히 돈을 벌어 시골 동생들의 학비를 보태기도 하고, 동생들이 성인이 됐을 때는 서울로 불러들여 취업 자리를 구해주기도 했다. 엄마가 일하던 우체국에는 엄마의 성품을 좋게 본 한 남자 상사가 있었는데 그가 어느 날 엄마에서 맞선을 제안했고, 그날 맞선 상대로 나온 사람이 그 상사의 고향 친구인 아빠였다.
엄마는 결혼 후에는 다니던 우체국을 그만두었고 나와 누나가 국민학교에 들어간 뒤부터는 백화점 식품조리부에서 일을 했다. 하지만 식품조리 일은 몸이 너무 고된 일이라 엄마의 체력으로는 버틸 수 없었다. 엄마는 결국 몸이 아프게 되면서 일을 그만두었고, 다음으로 구한 일이 성당 일이었다. 처음에는 성당 성물 판매소에서 일을 시작했다. 하지만 은근 야망이 있는 엄마는 곧 성당의 사무실에서 하는 회계나 관리 같은 일에 관심을 두었고, 몇 년에 걸쳐 능력을 입증한 엄마는 마침내 성당 사무장이 되었다. 엄마는 새벽 미사 전에 출근해야 했고 밤 미사가 끝나야 퇴근할 수 있었다. 12시간 근무도 아니고 거의 19시간 근무였다.
집안일을 처리하고 우리를 돌보는 일은 대개 아빠 몫이었다. 아빠도 아침에 출근하고 저녁에 퇴근하는 직장인이었지만, 날마다 청소를 하고 주말이면 일주일치 반찬을 만들어놓는 등의 집안일을 도맡았다. 그사이에 문구류 유통일을 부업으로 했고 밤에는 성당 일 마친 엄마를 차에 태워 집에 데리고 오는 일도 거르지 않고 했다.
그런 부모의 빠듯한 일상이 너무 잘 보였기 때문에 나는 어릴 적부터 되도록 혼자 시간을 잘 보내려고 했다. 평일엔 해질 때까지 운동장에서 시간을 보내다 늦은 저녁이 되면 집에 들어와 저녁을 차려먹고서 일찍 잠자리에 누웠고, 주말엔 새벽미사 가는 엄마와 같이 성당으로 출근해 성당 이곳저곳에서 시간을 보내다 저녁미사가 끝난 뒤 퇴근하는 엄마와 집에 돌아오곤 했다.
10.
성당에서 『데미안』을 읽기 좋은 장소로 떠오르는 곳은 두 군데였다. 한 곳은 사제관. 또 한 곳은 성가대 준비실.
우리 본당 신부님은 이탈리아 로마에서 잠깐 유학을 하고 돌아온 분이었는데 짧은 유학 중에 얼리어답터가 된 까닭에 그의 사제관에는 온갖 신기한 물건이 가득했다. 그때가 30여 년 전이었음에도, 그의 방에는 영화를 보기 위한 빔 프로젝터와 스피커가 있었고, 악기들도 몇 가지가 있었고, 당시로서는 고사양의 컴퓨터도 있었다.
신부님은 성격도 다정다감했다. 나는 다정한 본당 신부님과 사제관에서 늘 멋진 시간을 보냈다. 신부님은 프로젝터를 켜서 옛날 영화를 틀어 같이 보기도 했고, 바쁜 일이 있어 나가봐야 할 때는 혼자 놀고 있으라면서 컴퓨터를 켜주었다. 그때 나는 그림판이나 어도비 포토숍의 초기 버전으로 똥이나 지렁이 같은 걸 마우스로 슥슥슥 그리면서 놀았다.
하지만 사제관에서 노는 게 늘 편하지만은 않았다. 아무리 다정한 신부님이래도 엄마의 고용주인데 그가 마냥 편할리가. 그래서 나는 성당에서 외진 곳을 찾기 시작했고 남들 눈에 띄지 않고 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을 몇 군데 발견했다. 그중 가장 아늑한 장소가 바로 성가대 준비실이었다. 성가대 준비실은 그런 곳이 있다는 걸 모르는 사람도 많을 만큼 외진 곳이었다. 성가대 사람들이 정말 급할 때 잠깐 얼른 들어가 옷을 갈아 입으려고 마련한 임시공간 같은 곳이었다. 그래서 성당 미사가 있거나 성가대 연습이 있는 날이 아니면 누가 일부러 찾아올 일도 없었다. 덕분에 그곳이 내게는 가장 편안한 쉼터였다.
그날 나는 정선에게 빌린 『데미안』을 들고 성가대 준비실로 들어갔다.
11.
책을 읽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지금도 그런데, 왜 이런 얘길 하는지에 대한 예감 없이는 무엇도 잘 이해하지를 못한다. 책은 대부분 암호처럼 써 있어서 나는 계속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게 된다. 그리고 자꾸만 확인하고 싶다. 지금 이런 얘길 왜 하는 거예요? 이 얘기가 지금 왜 나와요?
내가 읽은 『데미안』은 소담출판사에서 펴낸 청소년용 각색본이었는데 그럼에도 내용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독서 자체가 어려운 일인 걸 그때 처음 깨달은 것 같다. 하지만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떠오르는 모습이 있었다. 책의 줄거리와 인물들에 대해 눈을 반짝거리며 술술 이야기하는 성우의 모습. 아, 내가 이렇게 포기할 순 없다, 성우는 오늘도 뭔가 멋진 책을 읽고 있을 텐데, 그러고 정선에게 ‘너 이 책 봤니?’ 하면서 멋지게 말할 텐데… 그런 생각을 하면 순간적으로 정신이 반짝 돌아오는 것 같았다. 그렇게 꾹꾹 참으면서 처음으로 어려운 책 한 권을 끝까지 읽었다.
독서에는 무서운 부작용도 있다. 내가 처음 읽은 문학작품인 『데미안』을 생각해봐도 그렇다. 헤세가 탄생이란 세계를 깨뜨리는 일이라는 메시지를 썼을 때, 아마 인간은 계속 자신을 감싸는 알을 깨면서 ‘자기 자신’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점을 일깨우려 한 것 같은데, 당시 나는 책을 읽을수록 자꾸만 허접한 나를 버리고 근사한 성우가 되고 싶어졌던 것이다. 성우가 데미안이고 나는 방황하는 싱클레어 같았다. 뿐만 아니라 자꾸만 ‘눈을 떠라, 눈을 떠라’ 같은 식의 메시지를 접하다 보니까 내가 비록 눈을 뜨고는 있지만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의식이 생겨났다. 나는 어려운 책을 읽으면서 점점 더 나를 싫어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나는 책 무서운 줄 모르고 『데미안』을 끝까지 읽고 말았고, 그날부터 나를 알에 갇힌 새로 생각하며 살기 시작했다. 책을 읽은 다음 날부터 날마다 내가 실수로 죽인 참새의 무덤을 찾아가 한참 시간을 보내는 습관도 생겼다. 같은 새로서 대화를 좀 해보고 싶었던 것이다. 너 대신 내가 새의 삶을 살게 됐나 봐.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말 좀 해줄래.
일상에도 변화가 찾아왔다. 운동장에서 축구공을 차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데미안』을 다 읽은 다음엔 동네 서점에 가서 『지와 사랑』(『나르치스와 골드문트』를 소담출판사에서는 『지와 사랑』이라는 제목으로 출간했다)을 샀기 때문이다. 이젠 『지와 사랑』을 읽기 위해 집에 가야 했기에 운동장에서 날이 어둑해지도록 시간을 보낼 필요가 없었다. 『데미안』을 읽으면서 내 영혼이 싱클레어의 몸에 갇혔다면, 『지와 사랑』을 읽는 동안에는 내 영혼이 골드문트의 몸에 갇힌 듯했다. 나는 계속 좀 뭔가 모자라는 친구들에게 나를 이입하면서 필요 이상의 고민을 떠안는 경향이 있었다. 나는 이 두 권의 책 때문에 심지어 사춘기를 자발적으로 앞당겨 실행했고, 십대 내내 저 영향권에서 살게 되었다.
12.
우리는 중학생이 되었다. 정선이는 이마에 여드름이 잔뜩 올라와서 항상 피부 문제로 예민했고, 성우는 일찌감치 진로를 정한 뒤 학생인 우리와는 다른 일상을 살기 시작했다. 나는 여전히 숙제를 안 해가서 매 맞는 학생으로 지냈다.
성우는 체격이 좋아져서 어릴 때보다도 더 눈에 띄는 외모가 되었다. 하얀 피부에 눈웃음이 예쁜 아이는 이제 큰 키와 다부진 몸을 가진 아이로 훌쩍 자랐고, 그런 성우가 길을 지나가면 사람들이 뒤돌아 쳐다보는 일도 흔했다. 성우의 겉모습은 갈수록 근사해졌지만 성우에겐 걱정이 많았다. 성우는 자기가 걱정이 있다는 걸 내비치는 아이는 아니었다. 하지만 곁에 있으면 알 수 있었다. 성우는 자기가 홀로 된 어머니와 형의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실 성우가 그런 무거운 고민을 어린 나이에 전부 떠맡을 필요는 없었다. 어찌 보면 성우 스스로 그러한 부담을 앞당겨 떠맡은 것이다. 성우는 가족에 대한 큰 책임감을 가지고 있었고, 한편으로는 자신감도 가지고 있었다. 성우는 중학교 1학년이었는데도, 자기는 학교를 그만두고 서울로 가서 연예인이 될 거라고 미래 계획을 말했다. 성우가 말하는 계획들을 듣다 보면 너무나 놀라워서 말이 안 나올 정도였다. 나로서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을 성우는 계획했다. 학교를 그만둔다는 것도 그렇고, 서울에 가서 살겠다는 것도 그렇고, 연예인이 되겠다는 것도 그렇고. 나의 고민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럴수록 나는 더 이상은 내가 성우에게 무얼 조언할 수 없고, 어느 순간부터는 그의 말에 장단조차 맞출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성우는 항상 계획을 세웠다. 나는 늘 미래를 계획하는 성우가 내심 버겁지 않을까 걱정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성우가 계획을 세우는 이유가 꼭 어머니나 형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이 언젠가부터 조금씩 느껴졌다. 성우는 인생을 남김없이 신나게 살고 싶어 했다. 성우는 이따금 늘상 비슷한 시간에 늘상 비슷한 곳에서 늘상 아는 얼굴들을 마주치는 이 좁은 동네가 너무나 지긋지긋하다며 밑도 끝도 없이 욕을 퍼부을 때가 있었다. 자신을 ‘아빠 없는 불쌍한 아이’로 대하는 사람들의 눈빛이 미칠 듯이 싫다는 말을 한 적도 있었다. 나는 아무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한 채 성우의 눈을 바라봤다. 그러면 성우는 곧 환하게 웃었다. 눈웃음은 성우의 얼굴에 언제나 새겨져 있었다. 성우는 여전히 얼굴이 환하게 빛나고 눈웃음이 예쁜 아이였다. 하지만 그가 속내를 말할 때는 달라졌다. 그럴 때마다 성우는 상당히 거친 말들을 쏟아냈다. 그는 정말로 곧 학교를 관두고 서울로 떠날 것 같았다. 나는 성우의 계획도, 성우의 격정도 불안했다. 그런 성우를 지켜보며 나보다 훨씬 더 불안해하는 사람은 정선이었다.
13.
121동 뒷산에는 그사이 산책로가 생겼다. 우리가 국민학생일 때는 그곳에 좁은 산길뿐이었는데 이제는 포장된 길이 조성된 것이다. 다행히 참새 무덤은 다치지 않았다. 나는 산책로를 걸어 중턱까지 오른 후, 나뭇잎 깔린 숲 안쪽으로 몇 걸음 헤치고 들어가 참새 무덤에 찾아갈 수 있었다. 산책로에는 드문드문 벤치도 세워졌다. 사람들은 산책로를 걷다가 벤치에 앉아 물을 마시거나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나는 그곳이 나만의 자유로운 아지트가 아니게 된 것이 조금은 서운했다.
성우가 서울로 떠나고 정선의 표정은 눈에 띄게 어두워졌다. 그래서 나도 한동안 쉽게 말을 걸지 못했던 것 같다. 대신 나는 쪽지를 쓰기 시작했다. 그 쪽지들을 늘 정선에게 건네진 않았다. 가끔, 쪽지를 건네는 일이 전혀 어색하지 않을 때, 그런 때를 골라 정선에게 쪽지를 건넸다. 그날은 정선의 생일이 있는 주의 평일이었다. 나는 정선에게 줄 게 있으니 만나자고 했다.
우리는 참새 무덤 근처 산책로 벤치에서 만났다. 정말 오랜만에 정선과 둘이 만나는 것이었다. 나는 여전히 정선과 있으면 긴장되었다.
14.
우리는 성우 얘기는 하지 않았다. 나는 저질 무리들이 남중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정선에게 얘기해줬다. 정선은 고개를 숙이고 킥킥 웃다가 고개를 들고 잠깐 하늘을 올려다봤다. 잠시 후 정선은 불쑥 어머니 얘기를 했다.
정선의 어머니는 몸이 무척 약하시다고 했다. 정선은 딸 셋 중 막내였는데, 정선을 임신했을 당시 원래 몸이 약했던 어머니의 건강이 심각한 상태까지 갔었다고 한다. 그래서 주위에서는 정선을 낳는 것을 만류하기도 했지만 어머니는 목숨을 걸고 정선이를 낳았다고 한다. 그래서 정선은 늘 엄마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졌다. 그리고 엄마가 쇠약해져서 결국 자신을 떠날지 모른다는 생각에 항상 불안해했다. 정선은 혼잣말하듯 말했다. “내가 엄마를 지켜줘야 해. 그러려면 내가 더 강해야 하는데…”
정선의 아버지는 어느 회사의 임원이라고 했다. 지금은 회사 이름을 잊었지만, 어린 나도 이름을 들어봤을 정도로 알려진 회사였다. 아버지는 야망이 큰 사람인데 최근에 뭔가 회사 일이 잘 안 풀리고 있어서 늘 늦게까지 일을 하고, 집에 돌아오면 술을 드신다고 했다. 나는 정선이네 집에서 본 양주병들이 떠올랐다. 예전에 한번은 정선이 아버지가 아파트 앞 길가에 차를 세우고 담배를 피우며 정선이를 기다리는 모습을 본 적도 있었다. 그때가 등교 시간이었으므로 아마도 정선을 차로 학교에 데려다주려고 기다리셨던 모양이다. 정선의 아버지는 소나타에 시동을 켠 채 세워두고 차에 기대 담배를 피웠다. 그러다 정선이가 집에서 내려와 바삐 차에 올라탔는데, 아버지는 서둘지 않고 천천히 담배를 몇 모금 더 피우고서 양복을 매만지며 운전석에 앉는 것이었다. 정선의 말을 듣고 있으니 그때 기억이 영상이 재생되듯 불쑥 떠올랐다.
정선은 아버지가 무뚝뚝하고 어려운 사람이라고 했다. 하지만 자식들에게는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고 했다. 딸이 셋이라 집 사정이 여유롭진 않지만 만약 자기가 좋은 학교와 좋은 학원을 원하면 아빠는 어떻게든 마다않고 지원해줄 사람이라고 했다. 거기까지 말하고 한참 말이 없던 정선은 다시 혼잣말하듯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난 가끔 좀 무섭고 답답해.”
정선은 스튜어디스가 되는 게 장래 희망이라고 했다. 전 세계를 다니면서 자유롭게 살고 싶다고 했다. 나는 정선이 틈만 나면 그림을 그리는 걸 봤기 때문에 미술을 전공하고 싶은 줄 알았는데 스튜어디스가 꿈이라는 말이 의외였다.
– 넌 그림 잘 그리잖아. 그림 그리고 싶은 거 아니였어?
– 맞아. 어릴 때부터 맨날 뭘 따라 그리는 게 습관이어서 시간만 나면 그림을 그렸지. 그래서 그림을 꽤 잘 그리게 됐어. 근데 내가 한 번은 생각을 해봤거든. 내가 그림 그리는 걸 정말 좋아하나? 생각해보면 나는 그림으로 표현하는 걸 좋아한다기보다 내 그림으로 친구들을 기쁘게 해주는 걸 좋아하는 것 같아.
– 그게 많이 다른 거야?
– 응. 나는 이건 이렇게 그려서 누구 주면 좋아하겠다, 저건 저렇게 그려서 누구 주면 좋아하겠다,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좋아. 그게 아니라면 글쎄… 나는 미술 시간도 싫고 사생대회도 너무 괴롭거든. 아참, 그래서 말인데 나는 미술보다는 미용을 좋아하는 거 같아.
– 미용을 좋아한다고?
– 응, 한 번은 내가 내 친구 연서 알지? 연서 화장을 시켜준 적이 있거든. 재미삼아서 말이야. 미술 실력을 거기에 써봤지. 근데 연서 얼굴에다 예쁜 화장을 하고, 그걸 연서가 맘에 들어 하는 게 너무 기쁜 거야.
– 그럼 미용사를 해도 좋겠네?
– 딱 그 생각이 들더라고. 나는 스튜어디스나 미용사를 해야겠다고.
그 순간 정선의 얼굴을 바라봤다. 얘기를 하다 보니 정선은 자기도 모르게 신이 난 것 같았다. 고무줄을 끊고 달아나던 저질 무리들에게 욕을 할 때 짓던 조금은 장난꾸러기 같은 얼굴도 그 순간 정선의 표정에 스쳐지나갔다.
정선의 손에는 항상 들고 다니는 그림 수첩이 들려 있었다. 나는 수첩의 해진 모서리를 잠깐 쳐다보고 있었다.
– 이거 보여줄까? 엄청 웃긴 거 많은데.
정선은 가름끈을 당겨 수첩을 펼쳤다. 그런데 수첩의 페이지가 넘어가는 짧은 순간에 나는 보고 말았다. 가름끈이 걸쳐져 있던 그 페이지에 성우 얼굴이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종이가 넘겨지는 동안 성우 얼굴을 그려진 그림이 몇 장 더 보였다. 나는 순간 불길에 덴 것처럼, 혹은 물에 빠진 것처럼, 뭐라 말하기 힘든 충격과 함께 기분이 이상해졌다. 이 뜨겁고 서늘하고 괴로운 마음은 뭘까.
나이가 들어 지금에 이르자 나는 저때 기분의 정체를 조금은 알 것 같다. 꼭 질투라기보다는 조금 더 깊숙한 감정인데, 가만 보니 나는 실제보다도 과장해서 버려진 듯한 기분에 빠지는 경향이 있었다. 아마도 내가 가지고 태어난 정서의 구조는 특히 저 부분에서 취약하게 만들어진 것 같다. 나는 버려지는 기분이 엄습하는 일이 무서웠다. 아무도 없는 곳에 나만 남겨진 기분. 아무도 날 찾지 않는 기분. 모두 날 잊은 듯한 기분… 어릴 적 어두운 옷장 속에서 느끼던 기분. 아무리 오래 기다려도 아무도 옷장을 열어 날 찾아주지 않았던 밤들. 내게는 그런 기분들이 있었다. 소중한 사람으로부터 난 너한테 아무 관심 없는데? 라며 외면당한 기분. 그런데 그런 기분이 나도 모르게 엄습할 때면 얼른 도리질을 하면서 그 순간을 빠르게 떠나는 것이 현명할 텐데, 나는 그 무거운 마음들을 자꾸 버리지 않고 수집하듯 마음에 담곤 했다. 성당 주차장에서 줍던 돌처럼. 어리석은 줄 알지만 어쩔 수 없는.
정선은 수첩에서 재밌는 그림들을 찾아서 내게 보였지만 나는 웃으며 맞장구를 치지 못했다.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러갔다. 나는 나로 인해 분위기가 가라앉은 게 미안했다. 분위기를 바꿔야 했다.
– 우리 저기에 참새 묻어주었잖아.
– 맞아. 바로 저기지.
– 내가 하느님한테 참새 잘 돌봐달라고 빌고 있거든. 근데 말이야. 신이 정말 있을까?
– 글쎄.
– 가끔은 내가 아무 의미 없는 짓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서…
그때 정선이 자세를 고치며 물었다.
– 참, 너는 성당 다니지 않아? 성당에선 뭐라고 하는데?
– 아마… 신이 있다고 할걸?
– 나는 엄마도 불교고 아빠도 불교라 절에만 가봤는데 성당도 궁금하다. 나 잘은 모르지만, 불교에서는 신에 대한 얘기 못 들은 것 같거든? 근데 난 신이 있으면 좋겠어.
– 왜 신이 있으면 좋겠어?
– 나는 이따금 벌어지지도 않은 일을 생각하다가 두려울 때가 있어. 엄마가 없어지는 꿈을 꿀 때도 그렇고. 아빠가 떠나는 꿈을 꿀 때도 그렇고. 언니들이 날 미워하는 꿈을 꿀 때도 그래. 나 언니가 둘이잖아. 근데 꿈에서 언니들이 나한테 막 화를 내는 거야. 정선이 너 때문에 엄마가 돌아가셨다면서 비난해. 가뜩이나 몸이 약한 엄마의 남은 기력을 네가 다 빼앗아가서 엄마가 죽었다면서. 나는 그런 꿈을 꾼 다음날이면 종일 신에 대해 생각해. 모두가 세상에서 사라진대도 사라지지 않고 내 곁에 남아줄 신. 그런 신이 나한테 괜찮다고, 다 괜찮다고 말해주면 좋겠어. 내 잘못이 아닌 걸 다 알고 있다고 내게 말해주면 좋겠어.
– 내 하느님이랑은 조금 다르네.
– 네 하느님은 어떤데?
– 내 하느님은 뭐랄까, 눈도 귀도 별로 안 좋은 것 같아. 내가 볼 때 그렇게 전능하지도 않고. 신다운 위엄이 있지도 않아.
– 그래? 그런 신은 좀 별론데.
– 그치… 내가 아는 하느님은 약간 내가 모으는 돌멩이나 새 깃털이나 그런 거랑 비슷한 느낌이야. 드문드문 나타나서 조촐하게 위로하고 스윽 사라지는.
– 그건 어딘가 귀여운 데가 있네.
정선이는 말로는 귀엽다고 했지만 조금 실망하는 기색이었다. 잠시 말을 멈추고 아까부터 신발 끝으로 꾹꾹 누르던 흙바닥을 표정 없이 바라보았다. 그러다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이 말했다.
– 나 5학년 때 잠깐 여자애들한테 왕따 당했던 거 알아?
– 아니, 몰랐어.
– 거봐. 모른다니까…
– 진짜 몰랐어.
– 몰랐을 수 있어. 여자애들이 막 대놓고 그러진 않았어. 근데 따돌림이 되게 집요했다. 지금은 쉽게 말하지만 그땐 너무 힘들었어.
– 조금 이상한 느낌을 받긴 했어. 너는 항상 한 친구하고만 다녔잖아. 그…
– 맞아. 연서. 나는 친구가 연서뿐이었어. 연서만 내 편을 들어줬거든.
이야기하는 동안 정선이가 신발로 하도 꾹꾹 눌러 움푹하게 다져진 흙바닥을 이번에는 내가 발뒤꿈치로 퍽퍽 찍어댔다.
– 하루는 미정이라는 애가 나한테 그러는 거야. 컨디션이 괜찮냐고. 내가 그때 몸이 좀 안 좋았거든. 그게 얼굴에 보였나 봐. 근데 나는 그걸 굳이 나한테 묻는 게 너무 싫은 거야. 어쨌든 내가 약한 모습으로 보인 거잖아. 그리고 내가 컨디션이 안 좋다고 말하면 날 또 약한 애로 여길 거 아니야. 난 약한 취급을 받는 게 세상에서 젤 싫단 말이야. 그래서 미정이한테 아무 대답을 안 하고 지나쳐버렸어. 근데 나 원래는 미정이랑 사이가 나쁘지 않았다? 그러고 나서 난 그 일을 금방 잊었어. 그 일이 그렇게 지난 일이라고 생각했고, 며칠 후에 미정이를 만났을 때는 내가 먼저 말을 걸었거든. 끝나고 숙제 같이 하자고 말하려던 참이었는데 얘가 날 되게 차갑게 쳐다보는 거야. 대꾸도 하지 않고. 그때 미정이 친구 하나가 내 어깨를 툭 치고 지나갔어. 그러더니 ‘아이고 귀한 몸께서 여기 서 계신지 몰랐네요 죄송합니다’ 그러면서 비웃는 거야. 난 내가 왕따가 된 줄도 모르다가 그때서야 안 거지.
– 그래서 어떻게 했어?
– 어떻게 하긴. 걔들 앞에서 울 순 없고 집에 가야 울 수 있는데 너 그때 봤는지 모르겠다. 우리 집은 방문을 다 떼서 없앴거든. 아빠가 방문 닫고 들어가 있으면 방에서 뭘 하는지 볼 수 없다고 다 떼버렸어. 집에서도 혼자 울 데가 없는 거지. 그래서 나는 아파트 계단통로에 가서 몰래 울었어. 15층에서 옥상으로 올라가는 사이에 계단통로 있잖아. 거긴 사람들이 올라오지 않으니까…
– 너희 아빠 이상해.
– 그런가?
– 몰라. 그건 그렇고 정말 충격이다. 어떻게 내가 네가 왕따당하는 걸 몰랐을 수 있지? 난 정말 몰랐단 말이야. 너는 항상 씩씩했으니까.
– 알 수 없었을 거야. 내가 감췄으니까. 난 왕따를 당하는 건 신경 안 쓸 수 있거든. 나도 걔들한테 관심 끄면 되니까. 근데 난 내가 누군가들의 눈에 남들과 다르게 보이는 게 너무나 무서워. 내가 만약 사람들로부터 가련한 사람으로 여겨지잖아? 그럼 나는 엄마한테 너무나 미안할 것 같아. 죽고 싶을 만큼 미안할 것 같아. 말을 하다 보니까 지금도 무서워져. 엄마가 약한 딸을 낳았다고 후회하면 어쩌지…
15.
우리는 둘 다 시간이 한참 지났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어느새 주변이 어둑해지고 있었다. 정선은 엄마가 기다린다며 얼른 가봐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그날 정선에게 주려던 쪽지를 생각했다. 쪽지는 주지 않기로 했다. 쪽지를 건넬 자신이 없었다. 나는 멀어지는 정선을 보며 외쳤다.
– 정선아, 생일 축하해!
정선이 고개를 돌려 나를 봤다. 나는 속으로 조용히 다짐했다. 내가 찾아볼게. 신처럼 이 세상에서 사라지지 않는 걸 더 찾아볼게. 그런 게 몇 가지 더 있으면 훨씬 든든할 테니까. 분명 이 세상에는 그런 게 더 있을 거야.
16.
나는 중학교 1학년 시절을 보내며 점점 더 어두운 아이가 되어갔다. 학교에 가면 학생들의 뺨을 때려 기절시키고도 아무런 제지를 받지 않는 사이코 선생이 (한 명도 아니고 여럿) 있었고, 그런 선생들이 한눈을 팔면 그 틈을 타 크고작은 권력을 행세하는 깡패 같은 애들이 득실거렸다. 나는 학교에서는 그냥 숨만 내쉬다 집에 돌아왔다. 유일하게 신이 날 때가 있었는데 그건 바로 축구 시합을 할 때였다. 나는 또래들보다 공을 잘 차는 편이었다. 축구 시합은 나도 은근히 기다렸다.
평소에는 책을 읽었다. 우연히 공짜로 책을 빌릴 수 있는 도서관을 알게 된 것이다. 나는 학교에서 집에 올 때 다세대주택이 빼곡한 소위 달동네를 가로지르는 가파른 길로 걸어오곤 했는데, 어느 날 우연히 그 길 중간에 도서관이 있는 걸 알게 되었다. 나중에 커서 알게 되었는데, 내가 살았던 성남시 은행동은 도시빈민운동이 활발한 동네였다. 내가 이용한 도서관도 아마 빈민운동가들이 만든 복지시설 중 하나였을 것이다.
그리고 정선에게 쓴 쪽지, 편지, 일기 따위가 날마다 늘어났다. 나는 중학교 1학년 때 처음 대학노트를 샀다. 그날그날의 사소한 이야기부터 책에서 본 거창한 이야기까지, 하고 싶은 그 많은 말들을 그저 마음속에만 쌓아둘 수가 없었다. 그래서 크고 두툼한 대학노트에 적기 시작했다. 나는 일기조차도 정선을 향해 썼다. 절대로 정선에게는 보일 수 없다고 여기면서도 늘 정선을 향해 뭔가를 썼다.
17.
그날은 중간에 도서관이 있는 오르막길 쪽이 아니라 아파트 단지 앞길을 지나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아름다운 피아노 소리가 들렸다. 나는 발길을 멈추고 소리가 나는 쪽을 기웃거렸다. 피아노 학원에서 새어나오는 소리였다. 잠시 소리가 멈춘 뒤, 이번에는 바이올린 소리가 들렸다. 어린 학생이 바이올린 활 긋기를 배우고 있었던 것 같다. 아름답고 세련된 소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 곡조가 내게는 너무나 아름답게 들렸다. 나는 아파트 단지의 조경용 바위에 앉아 한참 그 소리를 들었다. 그날 이후로는 집에 오는 길에 그곳에 들르는 일이 잦아졌다. 나는 바이올린 연습 시간에 맞춰 바위에 도착해 바이올린 소리를 집중해서 듣다가 연습이 끝나면 바위를 떠나곤 했다. 이런 음악들은 몇 백 년은 된 거 아닌가? 음악도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나?
18.
성우 소식을 들었다. 정선에게 들었다. 성우가 정선에게는 아주 드물긴 해도 전화를 한다고 했다. 한 번은 정선이 서울에 가서 성우를 잠깐 만났다고 했다. 성우는 연예인 준비는 그만뒀다고 했다. 성우에게 서울에서 묵을 곳을 제공하는 사촌형이 이번에 일본에 가는데 성우도 사촌형을 따라 일본에 갈 계획이라고 했다. 성우 소식을 전하는 정선의 목소리는 무거웠다. 성우는 일본에 가서 사촌형과 하려는 사업 생각에 엄청 들떠 있다고 했다. 성우가 하려는 일은 전기 기술자의 일 중 하나인데, 한국엔 아직 할 줄 아는 사람이 없고 일본에서도 몇몇만 할 줄 아는 그런 전기 시공 기술이 있다고 한다. 그 기술을 가진 일본 기술자가 사촌형을 좋게 봐서 일본으로 불렀다는 것이다. 성우도 사촌형을 따라가 그 기술을 배울 생각이고, 그러기만 하면 장차 일본에서 아예 사업을 차리든 한국으로 돌아와 독보적인 기술자로 살든, 어느 쪽이든 떼돈을 벌 수 있다며 정선에게 자랑했다고 했다. 정선에게 말을 전해 듣기만 해도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성우가 우리가 모르는 곳으로 너무 멀리 가고 있는 것 같아 불안했다.
정선이 서울까지 만나러 갔지만 성우는 형들과 약속이 있다면서 금방 자리를 떴고, 결국 오래 보지도 못하고 헤어졌다고 했다. 성우를 만류하고 싶어 하는 정선에게 성우가 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슬퍼짐과 동시에 화가 났다. “여기서 구질구질하게 살 이유가 없어. 나는 방황할 시간이 없다고.”
19.
또 하나의 충격적인 사실도 알게 되었다. 이건 정선이가 다른 날에 갑자기 내게 할 말이 있다고 하면서 알려준 것이다. 정선은 웃으면서 말했으나 나는 웃으면서 듣지 못했다. 우리가 정선의 방에서 처음 모였던 그날 성우가 말한 『제인 에어』 이야기는 다 틀린 거라고. 성우가 그냥 아무렇게나 지어서 말한 거라고 했다. 성우가 말한 인물들도 다 지어낸 이야기라고 했다. 정선이는 듣자마자 알았는데 너무 웃겨서 말리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나는 둘 다에게 너무나 화가 났다. 나의 열등감이 장난거리가 된 것 같았다.
20.
중학교 2학년이 되면서 나는 더욱 어두운 아이가 되었다. 부모님은 여전히 바빴고, 누나도 언제나처럼 자신의 일정들이 있었다. 나는 그들의 시야에서 벗어나 늘 혼자 있으려고 했다. 도서관, 피아노 학원 앞 바위, 참새 무덤 같은 곳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가 중학교 2학년이 되었다. 방학이 끝나고 학교에 갔는데, 반 아이 중에 이상하게도 자꾸만 날 힐끔거리는 아이가 있었다. 개학 하고 며칠이 지나도록 그 시선이 계속 날 향하는 게 느껴졌다.
하루는 쉬는 시간에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는데 그 아이가 내 옆으로 와서 나란히 섰다. 내가 손을 씻으러 가는데 내 뒤를 따라왔다. 그러고는 이상한 소리를 했다.
– 너 괜찮은 거야?
괜찮냐고 묻는 말에 뭐라고 대꾸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게 은수와의 첫 만남이었다. 은수가 내게 괜찮냐고 물은 건 내 머리 때문이었다. 당시 중학교는 두발 단속을 엄격하게 했고, 특히 학기 초에는 6미리 이하로 머리를 바짝 깎아야만 했다. 그런데 나만 긴 머리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머리를 일부러 안 깎은 게 아니라 깎아야 한다는 생각을 못했다. 그냥 이발을 깜빡한 채 방학 때 자란 머리 그대로 학교에 다녔던 것이다. 그런데 너무 태연하게 긴 머리로 다니니까 학교에서도 그럴 만한 사정이 있는 줄 알고 내 머리를 그냥 놔둔 것이다. 며칠 동안 어느 선생님도 뭐라 하지 않으니 학생들도 덩달아 내게 그럴 만한 사정이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는 동안 홀로 내 머리 문제에 집요하게 관심을 가진 아이가 은수였다.
21.
나는 은수랑 어울리기 시작했다. 은수는 얘기하는 걸 좋아하는 아이였다. 우리는 학교 끝나면 항상 놀이터에 가서 시간을 보냈다. 중학교 2학년 남자애들이 놀이터에서 노는 건 아무래도 좀 안 어울리는 일이었다. 우리가 시소나 미끄럼틀에 앉아 있으면 국민학생 아이들이 얼굴을 찌푸리며 떠나곤 했다. ‘저 형들은 왜 여기서 놀고 난리야’라고 말하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놀이터만큼 만만한 곳이 없었다. 떠들면서 놀려면 도서관 같은 실내보다 바깥에 있는 게 훨씬 좋았고, 이 얘기 저 얘기 하다 가끔씩 철봉에도 매달리고 그네도 한 번 구르고 하면서 찌뿌둥한 몸을 풀려면 역시 놀이터만 한 곳이 없었다. 놀이터에서 우리는 쉴 새 없이 많은 얘기를 했다. 그때 은수와 놀이터에서 나눈 이야기들은 이제는 기억 속에서 무척 아래로 가라앉았지만 결코 없어지진 않았다. 지금도 나와 함께 살고 있다.
22.
중학교 2학년 때, 성당 친구 중 하나가 내게 ‘로터리도서문화원’이라는 곳을 소개해줬다. 지역 유지들이 세운 로터리 재단에서 운영하는 일종의 공부방인데, 합숙을 할 수 있다고 했다. 성적이 괜찮은 학생만 입소할 수 있고, 입소 기간 중에 성적이 떨어지면 체벌과 경고가 주어진다고 했다. 대신 합숙비는 일체 무료이고, 정기적으로 명문대에 진학한 선배들이 단체 과외를 시켜준다고 했다. 이곳은 도시빈민운동가들의 도서관과는 또 다른 성격을 가진 지역 복지시설이었다. 지역에서 성적은 좋지만 학원은 다니지 못하는 학생들을 선발해 합숙 시설에서 무료로 공부하게 해주는 곳이었다.
그 성당 친구는 전교에서 몇 등 안에 드는 우등생이었고 나는 성적이 그 정도는 아니었다. 그럼 나는 못 들어가지 않냐고 물었더니 친구는 ‘다 꼼수가 있지’라면서 전혀 문제없다고 장담했다. 친구는 내 성적표를 위조해서 전교 등수를 확 올려줬다. 이를테면, 내가 전교 111등이었다면, 그 등수 숫자에서 1 하나를 화이트펜으로 지우고 복사기로 돌리는 수법이었다. 그렇게 전교 11등의 성적표 사본을 만들어 제출하는 것이다. 이 어설픈 방법은 효과 만점이었다. 나는 이 방법으로 무사히 도서문화원에 입소했고, 곧이어 내가 그 방법을 전수해서 은수도 도서문화원에 입소시켰다.
우리는 도서문화원에서 지내는 동안 점점 공부와 멀어졌다. 그래도 전혀 문제는 없었다. 화이트펜으로 숫자 하나씩만 지우면 되었으니까. 대신 우리는 밤마다 무척 낭만적인 방랑의 시간을 보냈다. 로터리도서문화원 바로 앞은 성남시 교육청이었는데, 그 앞마당은 초저녁부터 텅 비기 시작해 밤에는 완전히 우리만을 위한 공터가 되었다. 우리는 저녁 도시락을 일찍 까먹고 나서 교육청 공터에서 족구 시합을 몇 시간 동안 하다가, 관리자의 점호가 있는 시간에 맞춰 숙소에 잠깐 들어갔다가, 점호가 끝나면 담장을 넘어 건물을 빠져나와서 다시 공터에서 만났다. 공터에 드러누우면 밤하늘의 별들이 머리 위로 쏟아질 듯 빛났다. 그때만 해도 광공해가 지금보다 휠씬 덜 했던 것 같다. 나는 맑은 날엔 맨눈으로 성운도 보곤 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냈다.
정선이를 잊은 건 아니었다. 하늘에 흩어진 별들을 심심하게 바라보고 있으면 언제나 변함없이 정선이 생각났다. 그래서 항상 별에게 말을 걸었다. 편지나 일기를 쓰던 일이 별을 보며 조잘거리는 행위로 바뀐 셈이었다. 뭐가 그리 할 말이 많았을까. 나는 친구들이 다 자러 들어가고 은수마저 들어가고 나서도 혼자 공터에 남곤 했다. 새벽 4시, 5시에 자러 들어가는 때도 있었다. 내게는 별들 사이를 눈으로 좇다가 이런저런 생각으로 빠져드는 일이 가장 흥미로운 방랑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다 까무룩 잠드는 것도 좋았다. 잠깐 눈을 감았다 떠도 별은 그대로였다. 또다시 까무룩 졸다가 눈을 떠 쳐다봐도 밤하늘은 그대로였다. 우주는 여전히 눈앞에 있었다. 별들의 위치만 조금 옆으로 옮겨졌을 뿐 바뀌는 건 없었다. 밤하늘과 별도 사라지지 않는 것 중 하나였다.
23.
우리는 고등학생이 되었다. 나는 은수와 같은 고등학교에 들어갔고, 여전히 은수와 이런저런 작은 일탈들을 하며 고등학교 생활에 적응하는 중이었다. 정선이와 마주치고 싶어서 꾸준히 노력했지만 그럴 기회는 점점 더 희박해졌다. 정선은 학원에 다녔고 나는 로터리도서문화원에 다녔기 때문에 동선도 시간도 겹치지 않았다. 정선과 성우는 계속 만나는 건지 아닌지 알 수 없었다. 나는 마음이 이상해질 때면 교육청 공터에서 더 오래 시간을 보내면서 방황의 시절을 견뎠다.
그날 나는 버스 정류장에서 정선의 뒷모습을 본 듯해서 빠르게 쫓아갔다. 헐레벌떡 달려갔다. 그런데 가까이 가서 보니 정선이 아니었다. 정선과 키와 체격이 비슷한 모르는 여학생이었다. 나는 그저 혼자 착각한 것뿐인데도 뭔가 잘못을 저지른 사람처럼 가슴이 떨려서 바로 움직이지 못했다. 잠깐 무릎에 손을 대고 허리를 숙인 채 반쯤 주저앉아 숨을 골랐다. 잠시 그러고 있다가 다음 버스를 탈 생각이었다. 그때 방금 내가 착각했던 여학생이 왜인지 내 쪽으로 다가왔다.
– 나 기억 못하니?
처음에는 내가 아는 사람일리 없다고 생각해서 전혀 알아보지 못했는데 다시 보니 조금 낯이 익었다.
– 나 연서야. 5학년 때 우리 같은 반이었어.
– 아, 기억났어! 몰라 봐서 미안해. 너 많이 변했구나!
– 그치? 너 그래도 날 기억하긴 하네?
– 어, 알지 그럼. 근데 처음엔 교복이… 내가 아는 교복이 아니라서 못 알아 봤어.
– 맞아. 이건 예술고 교복이야. 난 학교를 멀리 다니게 됐어.
연서를 만나니 국민학생 때의 일들이 어제 일처럼 떠올랐다. 그때 정선의 유일한 친구가 연서였다. 연서는 피아노 전공을 선택해 예술고에 진학했다고 했다. 일찌감치 자기 진로를 정해서 멀리 학교를 다닌다는 게 신기하고 대단해 보였다. 그리고 일찍 진로를 정한 사람의 특징인지, 아님 학교가 달라서 다른 분위기를 가진 건지 모르겠지만, 나나 내 친구들과 비교했을 때 훨씬 어른스러운 느낌이었다. 내 기억에 초등학교 5학년 때 연서는 정말 말이 없는 아이였는데 지금 만난 연서는 표정부터 말투까지 마치 딴 사람인 것만 같았다. 헤어지기 전에 연서가 내게 말했다.
– 넌 저기 오는 30번 버스 타겠구나? 잘 가. 그리고 내 집 전화번호 알려줄 테니까 나중에 전화 한 번 할래? 삐삐 번호도 알려줄게. 꼭 연락해야 해. 알았지?
24.
연서를 다시 만난 건 그날 저녁이었다. 내가 집에 돌아가는 길에는 한적한 벤치가 하나 있었는데 어찌된 일인지 그곳에 연서가 앉아 있었다. 연서는 나를 기다렸다고 했다.
– 너 연락 안 할 거잖아? 맞지? 그래서 내가 찾아왔어.
나는 당황해서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연서가 말했다.
– 우리 오랜만에 은행국민학교 가볼까? 맨날 이 앞을 지나지만 운동장까지 들어가 본 지는 오래됐는데.
– 그래. 가보자.
우리는 운동장을 걸었다. 나는 여전히 주말이면 가끔 그곳에서 공을 찼기 때문에 어색하지 않았다. 정선이가 방 창문으로 날 보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계단을 향해 공을 차는 것이 내가 주말마다 하는 일이었다.
– 너 5학년 때 발야구 시합 기억나니?
그때 우리는 체육시간 때면 종종 발야구를 했었다. 나는 연서가 어떤 시합을 말하는지 알 수 없었다.
– 그때 넌 깁스를 하고 있었어. 너는 맨날 안경테도 부러뜨리곤 했지. 얌전하게 생겨서 말이야. 너는 축구 시합할 때마다 딴 사람이 되는 거 알아? 엄청 신나고 들뜨고. 네가 막 공 몰고 달려가면 애들이 다칠까 봐 너랑 안 부딪히려고 피하는 게 보인다니까? 나는 네가 축구하는 거 구경하는 게 좋았어. 그때 네가 아마 발야구 시합 전전 날인가에 팔을 다쳤어. 축구하다 넘어진 거야. 그래서 학교에 깁스를 하고 나왔지.
– 어, 네 말 들으니 기억 날 것 같아.
– 그럼 더 들어 봐. 그날 우리가 남자 여자 섞여서 발야구 시합을 했는데, 내가 그 시합에서 바라는 건 딱 하나뿐이었어. 네가 찬 공을 내가 잡고 싶었어. 난 그 생각뿐이었지. 너는 타석에서 갑자기 깁스를 풀더라. 붕대를 후르륵 풀더니 안에 든 석고조각도 던져버리더라. 네가 홈런을 치려고 벼르는 게 느껴지더라고. 그래서 나는 계속 뒷걸음질을 쳤어. 네 공이 멀리 날아올 줄 알고 뒤로 물러서고 있었던 거야. 근데 네가 그때 공을 진짜 멀리 찼거든. 그리고 그 공이 마침 내 쪽으로 날아왔어. 나는 너무 떨렸는데 공을 보면서 막 달려가다 보니까 어느 순간 공이 내 품에 쏙 들어와 있더라고. 그래서 진짜로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 내가 왜 그렇게 네 공을 잡고 싶었냐면, 그 공을 너한테 직접 건네면서 너랑 말을 하고 싶었던 거지. 나는 공을 들고 네게로 마구 달려갔어. 그때 너한테 공을 주면서 내가 뭐라고 했는지 아니? “네 공, 내가 잡았다!” 이렇게 말했는데 옆에서 누가 그러는 거야. “아웃! 꼴 좋다!” 그 소리를 들은 너는 내가 주는 공을 받지도 않고 가버렸어. 그날 나는 처음으로 내 마음을 표현했던 건데.
연서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기분이 이상했다.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알 수 없는 기분. 왜인지 슬픈 기분이 들었다. 그 시합이 기억이 날 것도 같았다. 나는 아마 정선이에게 멋지게 보이고 싶어서 팔이 불편한데도 시합에 나갔던 것 같다. 홈런을 쳐서 정선이와 같이 속한 우리 팀이 이기게 하려고 갑자기 깁스를 풀었던 일이 떠올랐다. 기억이 조금씩 되살아났다. 기분이 이상했다. 내가 연서랑 이렇게 옛날 이야기를 하고 있어도 될까.
– 연서야, 나는 이만 가봐야 할 것 같아. 나 사실 학원 비슷한 데를 다니는데 거기는 입소 시간이 정해져 있어.
– 싫은데?
– 뭐라고?
– 난 헤어지기 싫다고.
– 헤어지기 싫다니… 그럼 어떡하지?
– 농담이야. 그러지 말고 우리 딱 삼십 분만 더 얘기하다 헤어지자.
– 어, 그럼 그러자.
25.
연서를 다시 만난 건 한 달 후였다. 연서가 같은 벤치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 너 정말 연락 한 번을 안 하는구나.
– 어 미안해. 내가 다니는 학원… 아니 합숙소는 전화를 자유롭게 쓸 수가 없어.
– 아냐, 미안해하지 마.
– 미안해.
– 미안해하지 말라니까?
– 그래… 피아노 연습은 잘하고 있어?
– 피아노 연습 너무 싫어. 연습하기 싫어서 미칠 것 같아.
– 연습이 어렵구나. 난 피아노 치는 게 부럽기만 한데. 정말 부러워.
– 이거 별 거 아니야. 그냥 하면 다 하게 돼. 나는 사실 나한테 소질이 없는 걸 알아. 내가 이거라도 안 하면 엄마가 너무 불행해질까 봐 그냥 참고 하는 거야.
– 엄마 때문에 싫은데 하는 거야?
– 맞아. 너한테 이런 말하면 좀 웃기지만… 그냥 다 말하고 싶네. 우리 엄마 아빠 이혼했거든. 이혼할 수 있지. 난 사실 둘이 더 빨리 이혼하길 바랐어. 불행한 결혼 생활을 계속할 필요가 뭐가 있냐고. 아빠는 곧바로 다른 여자랑 재혼했어. 엄마가 그땐 좀 충격을 받더라. 근데 우리 엄마도 보통이 아니거든? 우리 엄마가 원래 집에서 살림만 하던 사람이었는데 이혼하고 몇 달 시름시름하더니 어느 날 갑자기 부동산 공부를 시작하겠대. 막 학원 다니고, 모르는 사람들을 막 만나러 다니기 시작하고. 그리고 얼마 후에 떡 하니 공인중개사가 됐어. 지금은 돈도 잘 벌어. 엄마가 미친 듯이 일을 해. 나 레슨비가 엄청 비싸거든. 심지어 엄마가 무리를 해서 이 바닥에서 젤 비싼 편에 속하는 선생님을 붙여줬어. 엄마는 날 누구한테도 꿀리지 않는 애로 키우려고 해. 엄마는 모아둔 돈도 없으면서 내 옷이랑 신발은 비싼 걸로만 사 입혀. 근데 말이야. 그런다고 내가 행복할 수가 있을까? 나는 조금도 행복하지 않아. 예술고 학교 분위기가 어떤지 아니? 거의 동물의 왕국이야. 진짜 원초적이야. 완전 약육강식 사회고, 잘나가는 애만 대접받는 곳이야. 비실해도 안 되고 어설퍼도 안 돼. 그럼 바로 쓰레기 취급이라고. 조금만 약점을 보이면 그 순간 바로 먹잇감이 돼. 근데 나도 잘 알지. 애들도 다 알아. 엄마도 알 거야. 내 실력이 연주자 급이 아닌 걸 안다고. 하지만 누구한테도 꿀려서는 안 되기 때문에 엄마가 날 비싼 선생님한테 붙인 거지. 그래서 나는 맨날 레슨 시작하기 직전까지 울고, 레슨 끝나자마자 울어. 그냥 눈물이 나. 너무 힘들어서. 그래도 관두겠다는 말은 할 수 없어. 엄마가 너무 불행해할까 봐. 나도 고민이야. 엄마의 상황이 언제까지 버텨줄지도 모를 일이야. 아니면 아예… 내가 직접 끝장내야 할 것도 같은데…
– 직접 끝장을 낸다는 게 무슨 말이야?
– 나도 모르겠어. 나는 그냥… 일단은 고생한 엄마를 좀 기쁘게 해주고 싶은 바람이 있어. 그게 비록 내가 원하는 길이 아니더라고. 일단은 엄마가 바라는 대학에 들어가줘야겠지? 근데 그게 가능할지 모르겠네. 아니면 빨리 끝장을… 정말 모르겠다. 뭐가 맞는 건지.
– 피아노 치는 건 어떤데? 레슨은 괴로워도 피아노 치는 게 좋을 땐 없어?
– 나한테 피아노가 어떤 의미인지를 말하면… 결코 간단히 말할 수 없어. 피아노처럼 항상 내 곁에 있어준 친구는 없었으니까. 내가 울 때마다 가장 많은 위로를 해준 것도 피아노고 날 젤 괴롭히는 것도 피아노고 젤 행복하게 해주는 것도 피아노야. 그걸 어떻게 다 온전히 표현하겠어. 다만 내가 뛰어난 피아노 연주자로 인정받을 실력이 아닌 게 문제일 뿐이야. 그래서 난 사실 연주보다 음향 공부를 해보고 싶어. 알고 보니 난 그쪽에 훨씬 관심이 있더라고. 음향 엔지니어.
나는 성인이 되어 음향 엔지니어로 일하는 연서의 모습을 상상해보았다.
– 아참, 갑자기 생각이 나는데. 너 단지 입구에 있는 피아노 학원 알아?
– 거기 알지.
– 그 학원 앞에 널찍한 바위 하나 있잖아. 나 거기 앉아서 음악 자주 들어. 피아노랑 바이올린 연습하는 소리를 들어.
– 알아. 알고 있어. 난 너에 대해 많은 걸 알아.
– 뭘 더 아는데?
– 너 정선이 좋아하지?
연서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나는 은수에게조차 정선이를 좋아한다고 말한 적이 없었다. 정선에 대한 마음은 나만 볼 수 있는 일기장에만, 그것도 암호처럼 적어놓을 뿐 누구에게도 들킨 적이 없다고 믿고 있었다. 심지어 정선에게도 전부 들키진 않았다고 믿어왔다. 그런데 그걸 연서가 어떻게 알고 있을까. 가슴이 철렁했다.
– 왜 그런 말을 하는 거야?
– 네가 정선이를 좋아하는 동안 나는 너를 좋아했어. 아직도 모르겠니? 내가 정선이랑 가깝게 지낸 것도 너 때문이었고. 너 정말 몰랐구나?
26.
그 시절에 나는 종이접기에 빠졌다. 축구도 책읽기도 관두었다. 학교에서도 로터리에 와서도 나는 종이접기만 했다.
그때 우리 반에 박지훈이라는 친구가 있었다. 지훈이는 수학 성적은 그저 그런데 수학 문제를 언제나 자기만의 기발한 방식으로 푸는 독특한 애였다. 지훈이 수학 문제를 푸는 모습을 보면 약간 변태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학의 메트리스 속에서 자기만의 길을 찾아 헤매다 마침내 길을 찾으면 쾌감을 느끼는 듯했다. 지훈이는 문제를 정답지대로 푸는 법이 없었다. 그리고 문제를 푸는 동안 연필도 잘 쓰지 않았다. 눈으로 문제를 쳐다보면서 손으로는 종이접기를 했다. 문제 풀이를 머리로 생각하다가 끝에 가서 답을 탁 적어내는 게 지훈의 방식이었다. 그동안 지훈이 접는 건 학이나 기린이나 비행기 같은 흔한 종이접기가 아니었다. 지훈이는 주로 반복되는 패턴을 접었다. 그걸 파도 접기라고 불렀다. 나는 지훈을 보면서 파도 접기를 따라했다. 파도 접기는 오목했다 볼록했다 오목했다 볼록했다 하는 규칙적인 패턴을 종이에 반복해서 새기는 일이다. 널찍한 종이 표면에 작은 파도들을 전부 새기고 나면, 그 파도 종이로 독특한 구조물을 만들 수 있다. 그때부터는 자기 상상과 이끌림대로 구조물을 만들어나간다. 파도 종이는 여러 각도의 면을 가지고 있기에 구조 조립도 가능하다. 파도 종이가 다면체 변형이 가능한 기초인 셈이다.
지훈이가 도인처럼 그러고 있는 동안 나는 어깨 너머로 파도 접기를 배웠다. 파도를 접다 보면 슬프고 답답한 기분을 조금은 잊을 수 있었다.
27.
다시 연서를 만났다. 이번에도 연서가 벤치에서 기다렸다. 연서는 자기가 피아노 치는 걸 내게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연서가 자기네 집에 가자고 했다. 처음에 말할 때는 집에 엄마가 계시다고 했는데 가보니 어머니는 안 계셨다. 연서는 그냥 자기도 모르게 거짓말을 했다고 털어놨다. 엄마는 오늘 집에 안 들어오신다고 했다.
연서가 피아노 의자에 앉았다. 연서는 옷을 벗었다. 나도 옷을 벗었다. 우리는 연서의 침대에 뒤엉켜 누웠다.
그때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절벽에서 발을 헛디딘 사람처럼 놀랐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연서는 이불을 뒤집어썼고, 나는 비틀거리며 속옷을 찾아 입었다. 연서 어머니가 이미 방문을 열고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연서 엄마가 욕을 했다.
– 이 미친 년. 씨발 진짜…
내가 연서 어머니에게 설명하려 했다. 그러자 연서 어머니가 냉기 서린 목소리로 말했다.
– 넌. 내 집에서. 조용히. 나가.
그때 연서가 나를 문밖으로 밀쳐냈다.
– 얼른 가. 빨리 가라고.
그러고 현관문이 닫혔다. 나는 집안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듣기 위해 현관문에 귀를 댔다. 당장은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잠시 후 연서 어머니가 양치질하는 소리가 들렸다. 연서 어머니가 카악 퉤 하면서 거칠게 침을 뱉었다. 그러더니 몇 초 후, 뺨 맞는 소리가 들렸다. 숨이 멎는 듯했다. 나는 문을 두드리면서 외쳤다.
– 어머니, 죄송합니다. 저 들어가게 해주세요. 잘못했습니다. 제가 말씀드릴게요.
그때 집안에서 연서 어머니가 연서에게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 나가서… 내가 젤 싫어하는 게 동네 망신이라고 말해. 안 가고 계속 떠들면 널 밤새도록 때릴 거라고 말해.
몇 초쯤 지나 연서가 문을 열었다. 연서는 뺨 한쪽이 빨개졌고 눈물 자국이 있었다.
– 나 사실은 엄마랑 싸우고 싶어서 오늘 널 여기로 끌어들인 거야. 널 끌어들인 건 널 좋아해서야. 미안해. 하지만 너도 이해하길 바라. 난 엄마랑 할 말이 있어. 빨리 가줘. 알았지?
난 연서의 아파트를 빠져나왔다. 그날은 집으로도 합숙소로도 돌아갈 수 없었다. 아침이 밝을 때까지 낯선 골목들을 계속 걸어다녔다.
28.
성인이 된 후 정선이와 두 번 더 만났다. 아니다. 세 번이다.
한 번은 정선이 다니는 대학교에서였다. 내가 다니던 로터리도서문화원에 정선과 같은 대학에 들어간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대학 아마추어 야구부에 들어갔는데, 그 야구부원 중에 정선이를 아는 남자애가 있다고 했다. 심지어 그 남자애랑 정선이가 사귄다고 했다. 로터리 친구가 그 말을 하면서 언제 넷이 한 번 보자고 했다. 나는 결코 그들을 같이 볼 생각이 없었지만 그냥 으레 하는 말로 그러자고 답을 했다.
얼마 후 로터리 친구가 내게 연락을 했다. 결국 약속을 잡았다는 것이다. 나는 일이 있어서 갈 수 없다고 대답했다. 그때 친구가 말했다. “정선이가 널 꼭 보고 싶다는데?”
29.
정선은 변한 게 없었다. 내가 먼저 인사를 했다.
– 너 빵집에서 알바했었잖아? 일은 할만 했어?
나는 정선이 알바로 일하던 빵집 앞을 몇 번 찾아갔었다. 그곳은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빵집이라 우리가 집을 오갈 때 꼭 지나치는 곳이었다. 나는 정선이 일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 부러 그앞을 더 자주 지나치기도 했다. 나는 빵집 안으로 들어가진 않았다. 나는 긴장하지 않은 채로 정선을 마주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게 맘대로 되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정선을 마주할 생각을 하면 지나치게 긴장되었다.
– 어, 알고 있었구나? 일은 할 만했는데 오래 다니진 못했어.
그때 정선의 남자친구라는 야구부원이 가게로 들어왔다. 그는 목소리가 크고 쾌활한 사람이었다. 야구부원들 사이에서 인기도 좋은 듯했다. 그는 정선이 옆자리가 비었는데도 테이블 가운데 자리에 앉았다. 뭐라고 뭐라고 떠들다가 짠 하고 외치면서 술잔을 들어 올리는 일을 쉴 새 없이 했다. 나는 담배를 피우러 밖으로 나왔다. 잠시 후에 내 로터리 친구와 정선의 남자친구도 무리들과 함께 담배를 피우러 밖으로 나왔다. 나는 구석으로 피해 담배를 마저 피웠다. 무리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낮에 있었던 야구 시합에서 이긴 후라 다들 많이 들떠 있는 게 느껴졌다. 특히 정선의 남자친구가 가장 들떠 보였다. 그는 며칠 전에 단란주점에 갔었다는 얘기를 자랑스럽게 떠벌렸다. 거기서 있었던 일을 대단한 무용담을 늘어놓듯 친구들에게 떠들었다. 나는 자리로 돌아왔다. 정선이는 혼자 맥주잔을 홀짝이고 있었다.
– 쟤 말이야.
– 누구?
– 네 남자친구 맞지?
– 그런데?
– 쟤 저질 같아.
– 뭐라고?
– 내가 아까 쟤가 친구들 하고 떠드는 소릴 들었거든. 너한테 전할 이야기는 아닌데. 여튼 쟤 저질이야. 알고 있으라고.
– 네가 뭔데 그딴 소릴 해?
– …
– 네가 무슨 상관인데. 왜 재수 없게 참견이야.
– 네가 알고 있으면 좋겠어.
– 저질은 너야. 네가 저질이야.
나는 그날 술을 많이 마셨다. 담배도 너무 많이 피웠다. 술담배를 한창 즐길 때였지만 그날은 지나치게 마셔서 정신을 차리기 힘들었다. 그럼에도 정선에게 취한 모습을 보이긴 싫었다. 나는 정신을 차리려고 애쓰고 있었다. 구석에서 혼자 힘겨워하는 나에게 정선이 다가오는 게 보였다. 정선이 날 쳐다보며 말했다.
– 내가 널 피하는 게 너한테도 좋은 일이야. 그렇지?
30.
시간이 흘렀다. 나는 정선에게 들은 말들을 곱씹으며 지냈다. 당장 찾아가 묻고 싶기도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난 정선의 속내를 알지 못했다. 정선의 마음은 무엇일까. 정선이는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조금은 좋아할까. 끔찍하게 싫어할까.
그러던 어느 날 충격적인 말을 들었다. 정선이와 같은 대학을 다닌다던 로터리 친구에게 그 이야기를 들었다. 자기도 나중에 알게 됐는데, 지난 번에 우리가 만났을 때 정선이와 야구부원은 이미 헤어진 후였다고 했다. 아주 잠깐 교제 같지도 않은 교제를 시작했다가 바로 헤어진 사이라고 했다. 그런데 정선이가 야구부원에게 내 앞에서 하루만 애인 연기를 해달라고 부탁했다는 것이었다.
혼란스러웠다. 정선이는 무슨 생각으로 그랬던 걸까. 그 생각을 하다 보면 나는 자꾸만 내 텅 빈 동굴로, 어두운 옷장 속으로 확 밀려나 떨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어두운 동굴 속에서는 이런 목소리들이 끊임없이 반향을 했다. 정선이는 저렇게까지 해서라도 나를 아예 차단하고 싶은 것이겠지. 내가 자기를 더는 좋아하지 않도록 확실히 못을 박고 싶었던 것이겠지. 내가 완전히 떠나가 다시는 나타나지 않길 바라는 것이겠지.
31.
그러고 몇 년이 지나고 나서 정선이와 한 번 더 만난 적이 있다. 대학로에서였다. 정선에게 연락이 왔다. 내가 그 동네에서 자취한다는 걸 친구에게 듣고서 정선이는 너무 신기했다고 말했다. 국민학생 때 정선이와 방을 같이 쓰던 둘째 언니가 간호사가 되었는데 서울대학병원에서 일한다고 했다. 대학을 졸업한 정선이는 병원 앞에 사는 언니집에 머물고 있다고 했다. 우리는 몰랐지만 그동안 같은 동네에 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날 우리는 어느 흑맥주 집에 가서 술을 마셨다. 비로소 나는 긴장을 풀고 정선과 만날 수 있었다. 긴장이 완전히 풀린 건 아니었다. 하지만 나도 나이가 들었고, 어느 정도는 긴장을 숨기는 수완이 생긴 뒤였다. 우리는 마치 처음 만난 사이처럼 데이트를 했다. 이상하게도 그런 기분이 들었다. 예전에 있었던 일들은 우리 머릿속에 더는 머물지 않았다. 호기심 많은 이십대 중반의 여느 젊은이들처럼, 서로 처음 만나 이제 막 관심을 키워가는 사이처럼, 우리는 소소한 일상과 재밋거리를 이야기하며 웃고 놀았다. 흑맥주 집을 나와 조금 걷다가 우리는 마로니에 공원 벤치에 앉았다. 옅은 미소를 띠고서 지나가던 사람들을 구경하던 정선이가 불쑥 고개를 돌리며 내게 물었다.
– 넌 요새도 이상한 음악 듣니?
– 내가 이상한 음악을 듣나?
– 아니라고? 그럼 오늘은 뭐 들었는지 말해 봐.
– 오늘은? 오늘은 넬 음악 들었는데.
– 거봐 처음 듣는 가수네. 넬이 뭐니. 어디 나도 좀 들어 보자.
우리는 마로니에 공원 벤치에 앉아 넬의 노래를 들었다. 음악이 멈추자 정선이 말했다.
– 내가 너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해줄까?
– 응.
– 뭐라고 정확히 말할 순 없는데… 지금 갑자기 생각난 표현인데 말이야… 이를테면 이런 식으로 말할 수 있을 것 같아. 넌 항상 내가 모르는 음악만 듣는 애야. 그래서 그런 네가 좋으면서도 그런 너를 내가 믿어도 좋을지 모르겠어.
–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 몰라. 난 네가 좋으면서도… 네가 아득해. 그게 불안해.
– 아냐. 그렇지 않아. 넬 듣는 사람 많아. 내가 모르는 음악만 듣는다는 건 그냥 네 생각일뿐이지 않아?
– 꼭 그런 뜻만은 아니잖아.
– 내가 왜 너에게 아득한 사람인지 모르겠어.
– 나도 잘 몰라. 너 기억나니? 우리 옛날에 신 얘기 했었잖아. 참새 무덤에서. 그날 나는 신이라면 사라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사실 그런 생각을 해본 게 그때가 처음이었어. 그런데 그런 말을 하고나서부터 나도 모르게 그날 신에 대해 나눈 대화가 문득문득 생각이 나는 거야. 신은 정말 사라지지 않을까? 이제 난 모르겠어. 뭐든지 결국 사라지지 않니? 꼭 구름처럼.
– 맞아. 모든 상황은 늘 바뀌는 것 같아. 신이라도 그럴 수 있지.
– 그렇게 바뀌고 결국 사라져버리면 그걸 과연 신이라고 할 수 있어?
– 근데 나도 그 비슷한 생각을 한 적이 있거든. 우리는 늘 상황이 바뀌는 걸 불안해하지만… 달리 생각하면 늘 바뀐다는 그 사실이 영원하지 않아? 파도가 바뀐다고 바다가 없어지지 않잖아. 구름이 바뀐다고 하늘이 없어지지 않잖아. 바뀐다는 사실이 영원히 계속되면서 우리 앞에 바다가 있고 하늘이 있잖아. 별들도 그래. 매순간 조금씩 이동하거든. 하지만 우주는 그대로야.
– 이거 봐… 역시 넌 나한테 위로가 안 돼.
내게는 정선이에게 언젠가부터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었다. 언젠가 정선이에게 주려던 쪽지에 처음 썼던 말. 하지만 그때도 이후에도 이 말을 전한 적은 없었다. 언제나 속으로만 말할 뿐이었다.
– 정선아. 너는 약하고 강해. 너는 착하고 못됐어. 너는 비겁하고 정직해. 너는 어떤 때는 파도 같고 구름 같아. 하지만 너는 바다이고 하늘이야. 파도랑 구름은 사라져도 바다랑 하늘은 사라지지 않지. 그처럼 너도 세상에서 사라지지 않아.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건 신이 아니라 너야. 나에겐 그래. 언제나 그랬어.
32.
다시 몇 년이 지났다. 저 두 번의 만남 이후 다시 정선을 만날 기회는 없었다. 하지만 마지막 한 번 우리는 스치듯 마주친 적이 있다. KTX 승강장에서였다. 정선이는 기차 승무원이 돼 있었다. 기차 승무원 옷을 입고 승강장에 선 정선을 본 것이다. 정선이는 어릴 적 꿈처럼 지금 자유롭게 살고 있을까 궁금했다. 그날 나는 꽤 거리가 떨어져 있었지만 정선을 한눈에 알아봤다. 그때 정선도 나를 알아본 것 같았다. 나를 보며 정선이 웃었다. 나도 웃음이 나왔다. 우리는 서로의 웃는 얼굴을 마주보며 헤어졌다.
나는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내가 항상 가지고 다니는 파도. 파도 접기 종이가 만져졌다.